특이하게도 마늘은 분명
이집트가 원산지인데도
이역만리 동아시아 땅 타국인 한국에서 격한 사랑을 받고 있다. 한식에서의 마늘은 단순한 향신료가 아니라
요리 종류를 가리지 않고 밑바탕으로 들어가는 식재료다. 그래서,
한국 요리의 시작과 끝은 마늘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인데
[33] 실제로 한국은 세계적으로 마늘을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섭취하는 국가로 손꼽힌다. 2017년 기준으로 한국인의 1인당 연간 마늘 소비량은 6.2kg으로, 연간 1kg에 못 미치는 서양권 국가들에 비해서 압도적이다. 심지어 이는 2000년대 초반에 기록된
9.2kg 이상에서 크게 줄어든 수치다. 통계청이 KREI 농업관측본부와 추산하여 낸 통계에 따르면 하루 평균 25g(5~6쪽)에서 17g(약 3~4쪽) 정도로 준 건데도 독보적이다.
# 가수
아이유가
"저는 마늘 싫어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미역국에 넣은 마늘 한 스푼이 큰 수저로 하나였을 정도인데도
"저 정도면 싫어하는거 맞다", "미역국 끓일 때 다진마늘을 저만큼 넣으면 적게 넣는거다." 라고 이야기를 할 정도다.
#단적인 예로, 레시피에서 어지간한 나라에선 마늘 한두 쪽을 넣어서 향을 입히는 것이 고작이고 개중에는 아예 건더기를 덜어내기도 하는데, 한식 레시피에서는 좀 많다 싶어도
그냥 다 때려박는다. 경우에 따라선 아예 열 쪽 이상 투하하는 경우도 많고, 식탁에는 또 생 마늘이 올라와서 같이 올라서 집어먹는다. 시중에 유통되는 깐마늘도 서양권에서는 한두 쪽을 비닐 포장하지만, 한국에서는 가장 작은 포장도 열 쪽 이상은 들어간다. 이처럼 대부분의 한식에서 마늘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으며, 원래 마늘이 들어가는 한식은 마늘 없이는 절대로 완성될 수 없다. 김치든 찌개든 볶음이든 뭐든, 마늘이 원래 들어가는 음식을 마늘 없이 만들어보면 다른 온갖 양념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원래 먹던 익숙한 맛이 나질 않는다. 이런 식이니 한국에서 마늘은 향신료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마늘이 채소라서 향신료는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채소인 동시에 향신료가 맞다. 한국인은 마늘을 감자처럼 생각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해외에서 장기 체류하다가 귀국한 경우 개인차는 있지만 '마늘 냄새'가 공기에서 난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다. 한국인이 동남아나 중국으로 입국했을 때 공기에서
쯔란 같은 향신료 냄새를 느끼거나 서양인의 체취에서
치즈 냄새가 나는 것처럼, 한국인의 체취에서 마늘 냄새가 난다고 하는 외국인도 있다. 야구선수
박찬호도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을 당시
미국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으며,
김치 등을 끊고
치즈 등만 먹었더니 냄새난다는 소리가 사라졌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
안정환 선수도
이탈리아 시절
마테라치로부터 "마늘 냄새 난다."는 인종차별을 듣고 한동안 한식을 기피했다고. 외국인이 봤을 때 '특이하다'고 여길 수 있는 체취가 생길 수도 있다.
[34] 외국 장기 체류자나 외국인뿐 아니라, 산에서 오랜 시간 수행하다 절에서 내려온
스님들도 강한 마늘 냄새를 느낀다고 한다. 스님들은
오신채에 속하는 마늘을 먹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마늘의 알리신 성분은 몸 속을 돌다가 호흡과 땀등으로 배출되기 때문에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없는 소리는 아니다.
한국의 마늘 생산량 역시 대단하다. 2008년 기준 전세계의 마늘 생산량은
중국이 77%인 1,208만 톤 정도를 차지하며 대륙의 기상을 보여주고 있다.
[35] 2위는 64.5만 톤을 생산하는
인도, 3위가 바로 32.5만 톤을 생산하는
대한민국. 하지만
인구수를 생각해 보면 전 세계 인구의 채 1%도 되지 않는 한국의 마늘 생산량이
3위라는 것만으로도 엄청나다. 이 정도로 마늘이
한국인의 식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참고로 한국에서 마늘을 많이 재배하는 지역으로는
경상북도 의성군,
충청남도 서산시,
충청북도 단양군,
경상남도 창녕군,
남해군,
전라남도 고흥군 등이 있다.
그리고,
김장을 할 때에도 마늘은 필수로 들어간다. 맛을 내기 위함이기도 하고, 양념이 채소에 제대로 붙게 하는 접착제 역할까지 겸하기 때문이다.
오신채 규율 때문에 마늘을 넣지 못하는 사찰에서는 때문에 김치를 담글 때 풀을 따로 쑤어 양념에 넣고, 양념에 넣는 고추 같은 재료도 상당히 굵직하게 다진다. 가늘게 다지면 채소에 붙지 못하고 미끄러져 버리기 때문. 최근에는 다진 마늘이 유산균 번식의 기폭제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요리의 진정한 상징은 마늘이라고 할 만하다. 세계적으로 한국 요리의 이미지는
매운맛이 대표적이지만, 모두 알다시피 맵지 않은 한국 요리도 꽤 있는 반면 마늘이 안 들어간 한국 요리는 정말 드물다. 사람들에게 친숙한
시금치 나물은
고추는 한 톨도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36] 마늘은 꼭 들어간다. 또한
한국 요리에서 국물 요리의 위상은 매우 높은데, 그 국물 요리에 거의 필수로 들어간다. 사람들이 자극적인 맛으로 전혀 생각하지 않는
미역국에도 마늘이 들어간다. 마늘 없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는 그것보다 끔찍한 것도 없고,
한국 입맛에 길들여진 사람이라면 뭔가 심심하게 느껴질 것이다. 직접 겪어보고 싶다면 미역국을 한 번 끓이면서 마늘을 넣기 전과 넣기 후를 비교해보자. 체감상 마늘이 미역국의 100%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실제로 한식, 특히 찜이나 국물 요리를 만들 때엔 마늘이 없으면 제 맛을 내는 것이 불가능하며,
[37] 대체할 재료도 마땅히 없다.
자취생들이 처음 요리를 혼자 할 때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마늘을 비롯한 조미료를 깡그리 무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한식 국물요리에 마늘을 안 넣게 되면 본가에서 먹던 그 맛이 절대로 안 난다.
한국 요리에서 쓰이는 양념에는 마늘이 들어가지 않은 경우가 손에 꼽힐 정도며,
양념치킨의 양념에도 들어간다.
한국 요리의 온갖 기본적인 요리가 총출동하는
한식조리기능사 국가기술자격 시험에 출제되는 문제가 총 31개
[38]인데, 이중 마늘이 들어가지 않는 음식은 단
4개[39]뿐이다. 개정 전에는 마늘을 안 쓰는 요리가 10개 있었는데, 그 중에 또 3개는 각각 지지는 떡(
화전),
유밀과(매작과), 음료수(배숙)에 해당하기에, 누가 봐도 밥상에 올리는 음식이 아니다. 순전히 식사류만 놓고 따지면 마늘 사용 비율은
85%에 육박한다.인스턴트
라면과 관련한 유명한 레시피 중에,
"다진 마늘을 넣으면 한식 국물 느낌이 난다" 라는 것이 있을 정도다. 참고로 시판 라면에는 이미 마늘이 들어가는데, 거기다 추가로 마늘을 넣으면 맛이 더 좋아진다는 레시피가 있을 정도니 한국인들에게 보편적으로 마늘을 넣은 맛이 얼마나 선호되는지 짐작할 수가 있다. 만약에 마늘이 갑자기 몽땅 사라진다면,
그날부로 기존의 한식은 멸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당신이 아무리 마늘을 싫어한다고 한들, 한국에 사는 한국인인 이상 전 세계 기준으로 평균 이상의 마늘을 섭취할 가능성은 거의 100%이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각기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한 일본과는 다르게 한국에서 각기병은 책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병으로 인식된지 오래이다. 각기병의 주된 원인이
비타민 B의 결핍인데, 마늘에는 비타민 B가 매우 풍부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마늘
알레르기가 있는 한국인들은 밖에만 나가면 식사가 매우 험난해지기 때문에 그야말로 거의 죽을 맛이다. 우스갯소리로 없던 마늘 알레르기가 생기면 "한국인 자격 박탈당했다" 라고 자조하기도 한다거나 진화론적 관점에서 한국인은 마늘 알레르기로부터 무적 기믹이 붙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우스갯소리로, 한국인들이 마늘이 이렇게 많이 먹는 이유를 상술한
단군신화와 연결해서 "한국인 시조 중 하나인 웅녀가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된 탓에 한국인이 인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렇게 마늘을 먹어대는 것이다" 라고 한다. 100일 동안 마늘을 먹지 못하면 단군신화처럼
곰이 되어버린다고. 더 나아가 한국인의 마늘 섭취량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과 한국 범죄율이 느는 것을 두고, 마늘을 덜 먹어서 사람이 덜 된 탓에 범죄가 느는 거라고 농담하기도.
예전엔
중국에서 수입 마늘이 많이 들어왔지만,
SARS와
신종플루를 기점으로 해서 신종플루에 마늘이 좋다는 얘기가 퍼지는 바람에 중국에서 마늘 투기가 일어나 중국산 마늘의 가격이 국산 마늘의 가격을 초월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덕분에 오히려 중국산 마늘을 보기가 더 힘들어진 상황. 인체가 인플루엔자와 같은 병원체와 싸우는 동안 비타민 수요가 급증하니 틀린 말은 아니다.
타미플루 정도는 돼야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인플루엔자에게 비타민 따위는 껌이겠지만, 일반적 감기라면 비타민을 추가로 섭취하는 것으로 증상을 그나마 덜 수 있긴 하다. 90년대 중후반 당시 중국에서 마늘을 해외로 수출하는 일이 유행이었고, 이에 따라 한국에서 국산 마늘의 점유율이 급속히 떨어지는 건 물론이고 마늘 자체의 가격도 크게 하락해서 농가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는데, 이 때문에 중국산 마늘에 관세를 거하게 매겨서 수입을 제한하려다가 중국 당국에서 한국산 휴대폰의 수입을 제한하는 조치를 시행했고, 이 때문에 결국 한국에서 중국에 굴복하는 일이 벌어졌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다만 한국에서 마늘 사용량이 많은 데에는 해외의 마늘에 비해 맛과 향이 약한 편이라 그렇다는 분석도 있다. 이탈리아에서 파스타에 사용되는 마늘은 한 쪽이면 마늘향을 내는데 충분하지만, 한국에서 재배되는 마늘은 대여섯알은 넣어줘야 비슷한 향이 난다. 이는 한국에서 마늘을 생으로 먹는 식문화가 있어 해외에 비해 맛과 향이 약한 마늘이 선호되기 때문이다. 날로 먹지 않고 조리에만 쓴다면 조리 과정에서 매운맛이 많이 감소하므로 맛과 향이 강해도 무방하지만 해외에서 쓰는 강한 향의 마늘은 생으로는 먹기가 매우 어렵다. 물론 그런 식으로 향이 약한 마늘을 쓰도록 특화됐다는 점도 한국의 광범위한 마늘 활용을 보여주는 한 단편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