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의 내용은
레위기 11장 1절부터 30절까지를 인용한 것으로, 유대교 율법 상 금지된 식품종들을 열거하는 장면이다)
실상, 유대교도나 이슬람교도가 금기시하는 식품은 많은데, 정작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돼지고기뿐이다. 이는, 현대 사회의 주류 선진국인 서유럽이나, 한국 등지에서 익숙한 식품 중 유대교, 이슬람교도들이 금기시하는 식품이 주로 돼지고기라는 점에서 기인하는 듯 하다. 예를 들어 위의 구약성서에서 언급된 낙타, 따오기, 박쥐, 까마귀, 독수리 등등은 유럽인들이나 한국인들이 애초에 음식으로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니 굳이 금기시되는 이유를 고민해볼 필요도 없는 것이다. 심지어 오징어나 문어 같은 두족류는 남유럽인이나 한국인도 잘 먹는 음식이고 역시 유대교에서 금기시했다는 점에서 돼지고기와 비슷한데, 이에 대해 '합리적인 설명'을 제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즉, 종교에 의한 금기는 세속적인, 유물론적 설명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이 존재한다는 것이며, 마빈 해리스와 같은 사람들의 '세속적인' 설명은 유대교도 등의 식문화 금기를 정확히 모른 채 돼지고기에만 설명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
신(新)
무신론자로서 유명한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무신론-반종교 저작 《신은 위대하지 않다》의 3장에는 '돼지고기를 금하는 종교적 계율'에 한 챕터를 할양하는데, 그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친다. '고대 아라비아 지방에서 발견되는 고대인들의 쓰레기 흔적 중에는 돼지뼈를 흔하게 발견할 수 있지만, 유대인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쓰레기 흔적에만 돼지뼈가 발견되지 않는다.' 만일 돼지고기 금기가 세속적이고 경제적인 이유가 있었다면, 그 금기는 중동에 사는 여러 국가, 집단, 부족이 공유했을 것이다.
실제로, 고대 팔레스타인 지방의
유대인들만 하더라도 주변의 비유대인 집단이 고기를 먹기 위해 돼지를 사육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약성서에서
예수가 '거라사' 지방에서 '레기온'(군단, 군대) 귀신을 쫓아낼 때, 귀신 떼들이 빙의했던 몸에서 떠나면서 수천 마리 돼지떼에게 빙의한 다음 죄다 물에 빠져 죽게 만들자, '돼지를 기르던 사람'들이 일제히 놀라 달아났다는 구절이 있다. 이 돼지들은 야생 돼지가 아니라 식용 목적으로 길러지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예수가 직접 들었던
돌아온 탕자 비유에서도, 탕자가 외국으로 떠나 자기 재산을 모두 탕진하자 '돼지 치는 일'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성서무오설적 관점에서 신약성서에 기록된 모든 구절이 문자 그대로 사실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초기 기독교가 형성되던 시기에 '팔레스타인 인근 지역에서 돼지를 사육하는 비유대인들'들이 있었다는 사실의 증거로서는 활용할 수 있다. 만일 비유대인 집단이 돼지를 키우지 않았다면 돼지를 키우는 것에 대한 언급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거라사 지방에서 레기온 귀신을 쫓은 이야기에서, 이 인근에 로마군이 주둔하고 있었으며, 죽은 돼지들은 로마군의 식량으로 사육되던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뉴 햄프셔 대학 출신의 Nicole J. Ruane은 Oxford Bible Studies Online에 다음과 같은 기고문을 작성하여 고대 유대고-이슬람교의 돼지고기 금기에 대한 마빈 해리스식 통속적 해석에 반대한다.
원문 원문 번역한 블로그 이하의 내용은 Nicole J. Ruane의 주장을 요약하여 서술한 것이다.
필론의 돼지로 유명한 기원후 1세기 경의
유대교 철학자 '알렉산드리아의 피론'은 돼지고기가 금지된 이유가 '돼지고기가 너무 맛있기 때문에, 돼지고기 때문에 폭식의 죄를 범하게 되기 때문이다'라는 이유를 댔다. 반면 중세의 유대인 철학자인 '모세스 마이모니데스'는, 흔히 알려진 마빈 해리스의 '세속적인' 이유와 비슷한 논증을 한다. 돼지가 불결하기 때문에 돼지고기도 불결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마빈 해리스의 세속적 해석에서 나타나는 '경제적으로 불편함'은 나타나지 않는다. 전근대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돼지고기 금기에 대해 이유가 분분했던 것은, 역설적으로 흔히 알려진 '세속적' 통설이 진짜 이유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레위기에서 먹지 말라고 한 생물들은 많이 나타나지만, 그 중에서 돼지는 특별하게 악평을 받는 동물이다. 이사아서 65장과 66장에는 돼지고기를 죽음, 우상숭배, 죄 등과 연관시킨다. 반면 구약성서에서 먹지 말라고 한 낙타,
[26] 토끼, 박쥐 같은 다른 생물들이 이렇게까지 나쁘게 표현되는 일은 없다. Nicole J. Ruane은 돼지고기가 이렇게 사악한 것으로까지 취급받는 것에 대해서 돼지의 출산 방식과 이스라엘의 장자 의식과의 연관성을 지적한다. 암컷 돼지는 임신하면 한번에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그래서 한꺼번에 나온 여러 마리 새끼돼지 중 누가 첫째인지를 알 수가 없다. 고대 이스라엘인에게 있어 '장자의 권리'는 대단히 중요하게 여겨졌다.
창세기에서
야곱과
에사오는 장자의 특권을 얻기 위해 다퉜기도 하다. 그리고 구약성서의 제례 의식에서 '첫째 새끼'는 제례에 쓰여질 중요한 동물이다. 출애굽기 13:13; 신명기 15:19-20 민수기 18:15-17 등에서 지시하는 여러 제례 방식에서 가축의 첫째 새끼를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돼지는 이와 같은 '유대인의 세계관과 계율'에 맞지 않는 동물이기에 부정하고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동물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돼지가 한번에 여러 새끼를 낳는다는 것은 다른 이교도들에게는 '다산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으며, 고대 중동의 다른 종교 의례에서는 돼지가 제물로 바쳐지기도 했다. 가령 히타이트 종교의 "라바르나를 위한 축복"에서는 포도나무의 풍작을 기원하며 '돼지가 새끼를 낳듯 많은 가지를 쳐라'라는 축복의 문구가 있었으며, 고대 그리스-아나톨리아의 테스모포리아(Thesmophoria) 의식에서는 여성들이 대지의 어머니
데메테르를 기원하기 위해 새끼돼지를 생매장시킨 다음 다음 해에 그 시체를 파내 비료로 쓰기도 하였다. 저자 Ruane은 이것을 '고대 유대교의 가부장제'와 연관짓기도 하지만,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이교도들에 대한 적개심을 보면, 이교도의 중요한 상징이자 제물로 쓰이는 돼지에 대한 반감에서 돼지고기를 금지할 것이 교리화되었을 수도 있다.
재미있게도 분자생물학으로 분석한 결과, 돼지가 최초로 가축화 된 곳은
근동 지역이다. 때문에 언뜻 보면 중동은 물이 적은 지역이어서 돼지 키우는 걸 억제했다는 주장과 상반되어 보인다.
게다가 사람들이 흔히 이집트-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사막'으로 연상하는 것과 달리, 전근대에는
나일강 유역과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 유역 외에는 사람이 없었다고 간주해도 될 정도로 강 유역을 중심으로 문명이 발전했으며, 때문에 전근대 비옥한 초승달 지대 문명들의 기록을 보면 습지나 숲에 대한 묘사가 자주 나올 정도로 해당 문명들은 물과 가까운 자연환경을 가졌으며, 지금도 티그리스 강-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습지에는 일반인들에게는 '
아랍인'의 생활상이라기엔 상상도 못 할
수상가옥 생활을 하고 있는
습지 아랍인들이 살고 있다.
일단 기원전 1000년 무렵에는 이집트를 중심으로 "돼지는 불결한 동물" 이라는 관념이 출현해서 금지는 되지 않았을지언정 인기가 줄어든다. 이 관념은 우연히 나타난 관념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이집트에 대해서 '사막'을 연상하나,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 믿은 신들을 보면
따오기,
악어,
하마 등
습지에 사는 동물들이 나타난다. 즉, 이집트는 건조지역 중 농사가 가능한 나일강 유역에 사람이 몰려 살았기 때문에 강에 기반한 문명이다.
때문에 이집트에서 돼지 혐오 정서가 나타난 것에 아쉽게도 '물이 부족해서 키우기 힘들다' 는 세속적이고 합리적인 이유일 가능성이 낮다.
또한 이슬람 이전 아랍인들을 흔히 유목민으로 간주하나 이슬람이 출현한 메디나와 메카 등 헤자즈 지역은 도시에 정주한 아랍인도 많고 반농반목 또는 반유목에 더 가까운 생활을 했으며, 유대인 군락이 이미 많이 생성되어 자체적으로 유대교를 믿는 아랍인들도 상당수 있었다. 특히 도시 지역은 유대교 신자 비율이 40%에 달했다. 아랍인이 이스마엘의 후손이라는 신화도 무함마드 이전에 이미 나타났다. 돼지고기 금지는 무함마드가 갑자기 도입하거나 정당화한 것이 아니라 이미 당대 아랍인들에게 익숙한 관념이었던 것이다.
현대에서는 "종교적 이유"를 낮게 치고 세속적이고 합리적이고, 유물론적인 이유를 더 크게 치기 때문에 전근대인들의 비종교적인 합리성을 찾으려 노력하지만, 전근대인들에게 종교란 매우 중요한 화제였다. 당장에 기독교 초기에는 더러운 음식과 깨끗한 음식을 나눠야 하나, 새 그리스도인에게 할례를 줘야하나, 비유대인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어도 되나 등이
매우 중요한 화제였다. 그리스-로마 문화에 익숙해 코스모폴리탄 성향을 가진 바오로가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최고 지식인이자 전파자였기 때문에 유대교의 구습을 버리자는 결정으로 갔지만, 유대교적 관념에 익숙한 지도자들이 계속 주도권을 가졌다면 유지하는 쪽으로 갔을 공산도 충분하다. 이런 잘못된 해석을 하는 이유는 특히 유물론적 사관에서는 문화나 생활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비율이 절대적이었다는 것을 모르거나, 무시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류이다. 비슷한 이야기로
아즈텍 제국의 인신공양을 '신대륙에선 가축이 될 동물과 그에따른 단백질 부족 때문에 인신공양을 했다'이라는 이론을 내세웠지만 사실은 아즈텍에서는 강낭콩을 썩어날 정도로 많이 재배했고, 이후 구대륙에서 돼지를 비롯한 가축이 도입되어 단백질이 넘쳐나는데도 불구하고
인신공양이 계속되었다는 점을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다 결국 가톨릭의 유사인신공양 의식인
성체성사가 도입되어서야 인신공양 의식을 그만두었다는 점에서 전근대인에게 있어서 종교의 위치를 실감할 수 있다.
이슬람교에는 유대교의
코셔 푸드 계율과 비슷한 음식에 대한 금기인 할랄 푸드가 존재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식재료에 대한 금기가 거의 없는 것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전파 방식에서 기인한다고도 볼 수 있다. 초기 기독교는 주기적으로 로마 제국 등지에서 탄압받았으며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사회적인 약자였다. 이런 사회적인 약자라는 어려움을 감수하고 로마 제국 내로 침투하였으며, 끝끝내 규모의 우세를 점해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기에 완전히 억압을 중단하고 합법적 종교, 더 넘어 국교로 공인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로마 제국은 '제국' 이라는 이름답게 다민족 국가였는데, 그만큼 식문화도 다양하였을 것이다. 예를 들어 유대교에서는 비늘이 없는 어류를 금지하여
두족류(문어, 오징어 등)를 먹어서는 안 되는 생물로 취급하지만, 이탈리아 반도의 라틴인들은 해산물을 즐겨 먹었고 문어도 곧잘 먹었다. 수백년 동안 로마로 유입되고 동화된 게르만족이나 켈트족은 돼지고기를 곧잘 먹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게 '너희들의 식문화는 죄악이니 기독교를 믿는다면 라틴인들은 문어를 먹지 말고, 게르만족과 켈트족은 돼지를 먹지 마라'고 한다면 당연히 거부감을 샀을 것이다. 반면 이슬람교의 초기 역사는 정복군주의 정복 전쟁과 비슷하다. 강대한 이슬람 군대가 비이슬람 지역을 정복하고 이슬람을 권위적으로 주입한 것에 가깝다. 이런 판국에서는 정복자인 이슬람이 피정복민에게 자신들의 식문화 금기를 충분히 강요할 수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식문화 금기 차이는 이런 관점에서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슬람교는 돼지고기 금기는 유지하였으나 유대교의 낙타고기 금지는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이것은 초기 이슬람교도 중 큰 비율을 차지하는 사막 유목민들을 포섭하기 위한 타협안이었을 것이다. 이들의 주 생계유지수단이자 식량 공급원이 낙타인데 그것을 먹지 못하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같은 이슬람권이라도 지중해 연안 및 동남아시아의 이슬람권 국가들은 다른 지역의 이슬람권에 비해 두족류 등의 해산물 요리가 발달한 편이고,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은 다른 이슬람권 국가들에 비해
말고기 요리가 발달했다. 이렇듯 이슬람교도 기독교만큼은 아니지만 전파 과정에서 각 지역의 문화에 따라 나름대로 유연성 있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불교에서도 비슷하게 드러나는데 초기 불교는 살생만 금했을 뿐 육식을 금지하지는 않았으나, 동북아시아로 전파된 불교는 남조 양나라의 황제인 양무제가 육식을 금하였고 이 영향으로 한국과 메이지 유신 전까지의 일본 불교 역시 육식을 금하게 된다. 반면 양무제의 권위가 미치지 않았던
티베트 불교와
상좌부 불교는 육식을 금하는 문화가 없다.
참고로 문화적 유물론 관점에서는 이런 반론에 대해 '유대인과 무슬림에게 직접 물어보고 팩트체크는 해 봤냐?'라고 반문하기도 하는데, 실제 유대교인, 무슬림들은 그 동안의 관습대로 '토라에 적혀 있어서', '쿠란에 적혀 있어서' 등의 대답이 돌아오는 것이 보통이다. 사실, 돼지고기의 금기가 정말로 세속적인 이유가 있었던 거라면, 현 시점에서는 굳이 금기를 유지할 필요도 없다. 실제로 이스라엘 지역이 다소 건조하고 물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27] 현대적인 기술을 이용하면 돼지를 얼마든지 사육하고 먹을 수 있다. 아니, 애초에 현대까지 갈 필요도 없이 예수라는 인물이 살던 시기 로마군은 이스라엘 지역에 주둔하면서 돼지를 잘만 기르고 먹기까지 했다. 설령 사육을 하지 않더라도 수입을 할 수 있는 시대다.
결론적으로 '이거다' 하고 콕 집어 말할 수 있는 정설은 없는 상태이지만 여러 가지 이론은 있는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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