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과열된 후추의 인기가 식은 후에는 후추의 가격은 가난한 소작농 정도가 아니라면 크게 부담되는 선은 아니었다. 영국 런던의 물가 기준으로도 잡일꾼이 일주일 정도를 일하면 1파운드가량의 후추를 구매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추를 비롯한 향신료 중개 거래는 당시 지중해 상인들의 젖줄과 마찬가지였다.
아이유브 왕조의 배를 가르고 일어선
맘루크 왕조는 십자군을 몰아내고 향신료 거래의 두 종점-육로의
레반트, 해로의
알렉산드리아-을 모두 점유하는 데 성공했는데, 또다시 서방의 십자군과 칼을 맞대는 건 경제적 손해라고 여긴 맘루크는 베네치아의 상인들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며 향신료 거래의 이권을 나눠 갖게 된다. 베네치아의 상인들은
키프로스를 비롯한 동지중해의 여러 섬을 거점 삼아 베이루트를 비롯한 레반트의 항구에서 향신료를 독점하였고, 맘루크는 맘루크대로 알렉산드리아의
수크에서 제노바나 아라곤의 상인들에게 향신료를 팔아치웠다.
베네치아의 향료 거리에서 베네치아는 240 파운드가량의 후추를 50~100
두카트 사이로 판매했는데, 레반트 지역에서 한번 아랍 상인의 마진을 거친 동량 후추의 가격이 25~40 두카트 정도였으니 대략 1.5~2배가량의 마진을 본 셈이었다. 또, 오스만이 득세하기 전 동지중해는 베네치아의 안방이나 다름없었으니 운임 비용을 최소화하는 게 가능했고, 이로 인해 향신료 중개는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고 지중해의 패권 싸움에 진입하기까지 지중해 상인들의 메인 상품이었다.
이러한
향신료 열풍에서 소외된 건 유럽 끄트머리에 위치한
포르투갈과
카스티야 같은 변방 국가였다.
베네치아의 향신료 독점으로 인해 웃돈을 주고 향신료를 사오던 이들은 해양 산업이 미래라는 비전을 갖고 국가 단위로 해양 산업에 투자하였다.
항해 왕자 엔히크 등의 왕족들도 정력적으로 바다 너머 미지의 땅으로 몸을 던지는 데 마다하지 않았고, 이들의 열정과 노력은 결실을 맺어 대서양 너머의 새로운 세계,
신대륙과
희망봉 너머의 인디아스를 안겨주게 된다.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 항로를 개척한 후 포르투갈 상선대가 싣고 온 향신료는 베네치아 상인들이 부르는 가격의 5분의 1 수준에서 거래되었는데, 이렇게 가격을 80%나 낮춰 판매하는데도 남는 마진은 현지 매입가의 무려 60배(!)에 수준이었다고 한다. 유럽 향신료 거래의 중심지가 베네치아에서 북해 연안의
안트베르펜으로 이동하면서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한 지중해 무역은 이때를 기점으로 쇠락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새로운 항로를 개척한 두 국가는 어마어마한 부를 쥐게 되었지만 반대로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향신료 거래는 배 10척을 띄워 1척만 돌아와도 원금을 건질 수 있는 대박 사업이었지만, 달리 말하자면 배 9척을 잃는 게 일상이었던 도박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카스티야는
아라곤 왕국과의 동군 연합, 그리고
레콩키스타 가 끝나고 무산층이 되었던 이달고(평귀족)를 징발해서 신대륙의
콩키스타도르의 인력으로 삼기라도 했지,
포르투갈은
인도 무역으로 얻은 부를 자국의 생산업 같은 내실에 투자하기보단 그 돈을 전부 해양 산업에 재투자하는 실책을 저질렀고, 이로 인해 가뜩이나 부족했던 인력이 꾸준히 고갈되어
[27] 이후 네덜란드, 잉글랜드 같은 후발 주자들과의 알력 싸움에서 허무하게 밀려나는 원인이 된다. 이 시기의 포르투갈은 찬란한 황금기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수많은 청년들이 부를 탐하는 광기에 희생되고, 이후 이어질 암흑기의 출발점이 된 서글픈 시기이기도 했던 것이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이 시기를 어떻게 추억하는지는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의 저작 《메시지(Mensagem)》에 수록된 '포르투갈의 바다'란 시로 엿볼 수 있다.
Ó mar salgado, quanto do teu sal
São lágrimas de Portugal!
Por te cruzarmos, quantas mães choraram,
Quantos filhos em vão rezaram!
Quantas noivas ficaram por casar
Para que fosses nosso, ó mar!
오, 짜디짠 바다여, 네 소금물의 얼마만큼이
포르투갈인의 눈물이겠는가!
그대를 헤쳐나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어머니들이 눈물 흘리고,
얼마나 많은 자녀들이 헛된 기도를 올렸으며,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결혼하지 못하고 기다렸으랴!
Valeu a pena? Tudo vale a pena
Se a alma não é pequena.
Quem quer passar além do Bojador
Tem que passar além da dor.
Deus ao mar o perigo e o abismo deu,
Mas nele é que espelhou o céu.
항해는 가치가 있었는가? 모든 것엔 가치가 있다.
이들의 영혼이 작지 않다면,
보자도르곶
[28]을 지나길 원하는 그 누구든
슬픔을 넘어서야 하리라.
신은 바다에게 위험과 심연을 주며
그 안을 거울 삼아 하늘을 비추게 만들었으리.
결국
포르투갈은 네덜란드와 잉글랜드 등 후발 주자에게 남방 항로의 주도권을 내어주었고, 이들이 말루쿠 제도 같은 핵심 지역을 영유한 뒤에도 후추의 값은 금방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독점이란 입지를 내세워 가격 유지를 위해 후추나무를 주기적으로 태워버리며 산출량을 조절했고, 후추 열매를 빼돌린 원주민은 사형에 처했을 정도였다. 그 때문에 이런 비싼 값을 노린 상인들은 후추에 장난질을 해서 양을 불리려 했다. 이를테면
겨자 껍질,
노간주나무 열매, 완두콩 가루를 섞어서 양을 불리거나 심하면 창고 바닥의 먼지를 섞기도 했었으며 이후
아프리카에서 후추 재배가 성공하면서 값이 크게 폭락해 관련 상인들의 줄도산이 이어졌다. 이때쯤부터는 가난한 농민들도 식단에 후추를 듬뿍 뿌릴 수 있을 정도로 사용이 보편화되었고, 중산층과 귀족층은 그동안 바다 너머의
향신료에 목매단 것에 대한 반향인 것인지 월계수잎이나 바질 같은 토속 향신료도 본격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