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치료에는 벤질
페니실린(Penicillin G) 240만 단위를 근육주사로 1회 투여한다. 환자에게 페니실린 알레르기의 병력이 있을 경우, 테트라사이클린(tetracycline)
[6] 500mg 하루 4회 X 14일이나
독시사이클린(doxycycline) 100mg 하루 2회 X 14일 경구 투여로 대신할 수 있지만, 임산부에게는 쓸 수 없다. 테트라사이클린이나 독시사이클린은 페니실린 G보다 효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되어있어, 2차 약제로만 쓰인다.
[7]초기에 병을 진단하는 데 실패할 경우에는 병이 진행되어, 매독균이 중추신경계로 침투하여 벤질페니실린이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워진다. 이러한 경우에는 최소 10일 이상 대용량 투여를 권장한다. 다른 후기 증상이 나타나면 1주일에 한 번씩 벤질페니실린 240만 단위를 근육주사하여 3주까지 치료를 실시한다. 일단 병이 진행된 단계에서는 치료로 병의 악화를 막을 수는 있어도 이미 발생한 신체의 피해에는 효과가 적다.
세프트리악손이 많이 쓰이고 있다.
페니실린은 국내 생산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세프트리악손은 위에 기술된 2차 약제인 테트라사이클린이나 독시사이클린보다도 약효가 확립되지 않았다.
오래 방치하면 망하는 병
[8]이니 현실도피 하지 말고 병원에 바로 가는 것이 좋다. 정 부담되면 종합병원 감염내과나 비뇨의학과를 찾아가면 된다.
21세기 시점에서 한국에서 흔한 성병은 아니라고는 하지만 의외로 그렇게 드문 편이 아니다.
치료 후 매독균 비특이 항체검사(Nontreponemal Test)를 3달에 한 번씩 검사하여 약물 반응을 검사하게 된다. 정상적으로 반응할 경우, 치료 후 6개월 이내에 항체가 1/4 수준으로 저하되게 된다. 참고로 한 번 감염되면 완치가 되더라도 혈청 항체 기록이 남는다. 그것도 평생. 하지만 이것은 TPHA 검사 한정. 1기에 유효한 치료를 받아 완치되었을 경우, 혈청 검사인 VDRL 검사에서는 음성(VDRL titer 1/4 이하)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다. 혈청 항체 검사 결과 양성으로 나왔다고 할지라도 non-reactive로 나오면 완치로 본다. 하지만 완치 후에도 가끔 양성에 reactive로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매독 정밀검사를 받아서 항체를 보게 되는데, 항체가 1/4 이하로 나오면 전염성이 없어졌다고 판단하게 된다.
처음 유럽인들이 매독으로 확인된 질병과 접촉했을 때, 매독은 썩은 내와 심한 통증을 동반한 달걀만 한 크기의 종양, 전신통, 극도의 고열, 그리고 신경매독에 의한 정신이상 증세 등 한센병을 능가하는 증상으로 악명이 높았고, 사망에 이르기까지 그 병환의 진행 또한 수 개월에 불과했다. 최초 접촉 이후 약 20년이 지나면서 매독의 잠복 기간은 길어졌고 진행 속도는 느려졌으며, 그 증상 또한 완화되기 시작하면서 그 치료와 증상 완화 연구에도 길이 열리게 되었다. 증상이 독했던 매독균에 감염된 환자는 모두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전염에 실패한 강한 매독균은 도태되고, 비교적 독성과 치사성이 약하고 잠복기가 긴 매독균만 살아남게 되었다.
[9]현대적 약품이 발견되기 전까지
유럽에서는
수은 증기를 국부에 쐬거나, 수은 연고(mercurial ointment)를 사용하거나, 욕조에 수은을 가득 채워 만든 수은탕에 불을 지펴서 뜨겁게 만든 후 거기에 사람이 들어갔다 나왔다고 한다. 체내로 침투한 수은의 독성으로 인해 매독균이 죽긴 죽었으니 나름 효과는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대신 수은 중독에 걸려서 죽거나 죽는 것만 못한 상태가 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신경매독과 함께 정신이상을 더 심하게 만들기도 했다. 당시에도 이러한 치료가 유해하다는 것을 알았으나 독한 매독에 걸리면 무조건 죽기에 이러한 유해한 치료라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치료를 받으면 불임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중 유명한 예가
멕시코 황제
막시밀리안 폰 합스부르크이다. 요컨대, 수은이 사람을 먼저 죽이느냐 매독균을 먼저 죽이느냐였고 운이 좋게 신체가 수은을 견디면 매독이 치료되는 무식한 치료법이었다. 하지만 수은이라도 쓰지 않으면 매독의 예후가 너무나도 끔찍했기에 이 방법은 수은이 인체에 극독이라는 것을 깨닫기 전 수백 년 동안이나 널리 쓰이게 되었다. 이 때문에 매독에 걸렸던 위인들의 기록을 살펴보면 매독의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수은 중독으로 먼저 죽은 기록이 꽤 있다.
과거에는 매독 치료를 위해
말라리아를 이용하기도 했다. 매독균은 섭씨 40도에서 3시간 이상 노출되면 전멸할 정도로 열에 취약하다. 그리고
말라리아는 체온을 섭씨 40도 이상 높이는 극렬한 면역반응을 발생시키므로 매독에 걸린 사람에게 말라리아를 감염시켜 3시간 이상 고열에 시달리게 하면 그 열을 견디지 못하고 매독균이 사멸하게 되고, 이렇게 매독이 치료되면 그 다음에 말라리아를 치료했다.
그럴 듯한 방법이긴 하지만 말라리아는 매독 이상으로 치사율이 무시무시한 병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매독을 치료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셈. 보통 체온이 섭씨 40도를 넘으면
뇌 단백질이 서서히 변성되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 방법 또한 결국 말라리아가 사람을 먼저 죽이냐 매독이 죽느냐의 문제였다. 이 방법을 응용한 연구로
율리우스 바그너 야우레크는 1927년
노벨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참고로 야우레크가 활동하던 시점에선 이미 말라리아는 앓는 사람은 지독하게 고통스럽긴 할지언정 키니네를 이용하여 상당히 통제 가능한 질환이 되어 있었다.
이후
파울 에를리히 등의 과학자가 새로운 약품인 살바르산
606호 등을 개발하면서 점차 독성이 약하고 진전 속도가 느린 질병이 되었다. 하지만 이 606호 역시도 비소가 원천이기 때문에 독성이 있었고 부작용에 대해 경고했으나 수은 중독으로 사망하거나 말라리아로 고열에 시달리는 것보다는 나았던 상황이라 광범위하게 쓰이게 되었다. 물론 5% 확률로 심장질환을 일으켜 운이 나쁜 몇몇은 약물 부작용으로 사망했다.
의학의 발전으로 페니실린이 실용화되면서 초기 발견에 성공하기만 하면 문제없이 치료가 가능하게 되면서 제한적으로나마 불치병 타이틀은 벗겨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장장 500년 이상 괴롭힌 끔찍한 병을 인류의 힘으로 해결한 셈이다. 다만 치료가 용이한 초기를 놓치면 어렵거나 과거와 같은 불치병 처분을 받는 건 비슷한 상황에서 사회적인 인식과 개인의 수치심 문제 등으로 매독 증상이 보임에도 '성병 발병자'라는 인식이 싫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골든 타임을 놓치는 사례도 일부 존재한다.
특히 성매매를 하거나 일부 성관념이 낮은 나라는 증상이 보이면서도 발병 사실을 숨기거나 아예 모른 채 지내기도 하는데, 매독은 엄연히 전염병이라 이 경우 같은 잠자리를 가진 사람에게도 전염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문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