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가 국교로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이의 영향으로 육식을 멀리하게 되었고,
제사상에도 어육을 올리는 것을 금했다고 하는데, 어육을 대신해서 과자를 올리게 되었고 그 때문에 과자 문화가 매우 잘 발달했다.
원나라에도 고려문화, 이른바
고려양이 유행하면서 약과도 그중 하나로 인기있는 과자였다고 한다.
공민왕 시절에는 나라 상태가 막장이다보니 약과를 비롯한 유밀과의 제조를 국가에서 금지할 때도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잔치나
제사 때나 올라가는 고급 음식의 위상을 계속 유지하다보니 흉년이 들거나 나라가 어지러울 땐 한동안 왕궁 밖에서는 만드는 것이 법으로 금지될 때가 있었다.
이는 당시
밀가루와
꿀,
조청,
기름 등이 다 만만치 않은 가격이어서 나라가 주관하는 잔치 때 가격 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약과 금지법이 시행될 동안 약과를 만들다 적발되면 곤장
80대를 맞았다고 한다. 이 정도면 사실 직접적으로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성종 시절에는 이미
양반과 양민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가정의 제삿날이나 잔칫날에는 상에 약과를 비롯한
유밀과가 빠짐없이 올라갔다. 너무 맛있기 때문에 법으로 아무리 금지해도 사람들이 계속 찾았기 때문이었다.
제사상에 오르는 음식이다 보니 "약과는 누가 먼저 먹을는지"라는 속담이 있다. 누가 먼저 죽을지는 알 수 없다는 뜻. 법을 어기고 약과를 만들거나 먹었다가는 죽을 수도 있었다는 점과 연계하면 참 묘하다.
한편 약과는 원래 매우 귀한 음식이었는데, 안동 김씨
세도정치 시기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안동 김가에 약과를 뇌물로 바쳐 나중에는 노비들이 뇌물을 받아들자마자 "이 정도면 약과로군." 하며 알아차린 데에서 "이 정도면 약과"라는 관용구가 나왔다는 민간어원설이 있다.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경 군대
PX에서 "옛날약과"라는 약과가 유통되었는데, 보통 약과보다는 두껍고 큰데다가 속에
팥소가 들어 있는 네모난 약과였다. 단 약과에 단팥이 들어 있으니 단맛은 말할 나위가 없었기 때문에, 평소 달콤함을 갈구하는 군인들에게는
초코파이와 더불어 인기 품목 중 하나였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판매되지 않고, 일반적으로 시판되는 약과만 판매된다. 가격도 싼 편이며, 아무래도 전통과자다 보니 아무리 작은 부대라도 이건 꼭 넣어두는 경우가 많아 인기는 많다.
오늘날에는 꿀을 제외한 밀가루, 조청, 기름의 가격이 매우 저렴하고 구하기 쉬워진데다 꿀을 대신할 수 있는 설탕, 산당화물엿등의 가격도 매우 낮아진만큼 자주 먹을 수 있는 전통과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