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이 명확하기에 사실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단순하다. 도망치지 않고 마주해서 완전히 이겨내며 소화하면 된다.
[81]문제는 이게 말이 쉽지, 실제로는 무지막지하게 어려우니 고생이다. 애초에 단 한 번에 소화 가능한 사람이라면 PTSD에도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핵심 요인을 소화해서 해결하더라도 그로 인해 망가진 뇌, 우울증, 인간관계, 경력손실 등등의 회복은 별개다. 솔직히 말하면 이것들까지 다 해결해야 진짜 끝이라고 볼수 있다. 질환의 경과 및 예후로만 따져본다면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증상이 악화되거나 재발 하기 때문에 PTSD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게 힘들 수 있지만, 위에서 쭉 설명해온 것처럼, 본인이 원인된 경험에 대해 마주하고, 스스로 납득을 하고
[82] , 파생된 감정, 생각에서 자유로워지고 정신, 몸 상태를 강화시킨다면 증상에서 벗어나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에 정신질환들에 무조건 불치병이라고 기술해놓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설명한 것들이 탈출하는 길의 정석이기도 하고 달성만 한다면 완전히 벗어나는 게 가능하지만 이것들 하나하나가 쉽지 않다. 당장 기억 마주하는 거부터 쉽지 않다.
[83] 게다가 충격적인 경험으로부터 생겨난 본인 내부의 생각들을 이기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
[84] 그리고 다 이겨내고 일상으로 돌아왔어도 그만큼의 세월이 사라졌기에, 망가진 인적,물적 환경을 감내하고, 벌어진 격차를 이겨내면서 상식인이라는 수준까지 따라가려면 정말 부던히 노력해야한다.
그래서 기억을 마주하고 소화하는 건 PTSD 치료의 가장 마지막 단계로, 일단은 여러 가지 불편감이나 플래시백, 신체적 불편감, 부정적인 감정등에서 회복시키는 안정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정신과 전문가들이 안정화 단계가 완료된 이후에 다음 단계로 넘어갈 걸 권고하고 있으며, 안정화 단계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기억을 마주하는 건 오히려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안정화 단계만 잘 이루어진다면 이후 단계는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는 전문가도 있을정도로,
[85][86] 1단계인 안정화가 가장 중요하다.
인터넷이나 위키 등지에서 PTSD를 치료하기 위해서 기억을 마주해야 한다는 말만 듣고서, 아직 기억에 대한 불편감이 남아있고 안정이 안되는데 기억을 함부로 마주하려 하는 건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다. PTSD는 엄연히 의과적 증상이며, 전문의의 치료가 필요하다. 일단은 정신과를 방문하여 안정화치료부터 받도록 하자.
치료는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심신 전반에서의 치료를 위해 주로 약물치료와 정신치료 요법이 사용되는데, 약물치료로는 SSRI(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가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약물로, 이 약물은 우울증 및 다른 불안장애의 증상과 유사한 증상뿐만 아니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고유의 증상도 호전시킨다. 정신치료 요법으로는 정신역동적 정신치료, 행동치료, 인지치료, 최면요법 등이 활용되고 있다.
다행히
개인에게 맞는 여러 치료법을 병행하면 성공적으로 치료할 수 있고, 치료 후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치료하지 않는 경우 30%는 저절로 정상으로 돌아오고, 40% 정도는 가벼운 증상을 지속적으로 경험한다. 20% 정도는 중등도의 증상을 지속적으로 경험하며, 10%는 증상의 호전이 없고 심지어는 증상이 악화된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걸 '이후 재발이 절대 되지 않는 수준의 완치'라고 단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상술했지만 PTSD는 뇌에 심한 손상이 가해지는 것으로, 일반적인 상처에 비유해볼 때 몸에 상처가 생기면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만 심한 상처는 지혈과 소독 등의 치료가 필요하고, 치료 이후에도 진피가 손상된 상처는 완전히 재생하지 못 하고 흉터가 생기며 그 부분은 다른 피부보다 감염
[87]과 손상에 약해지는 것과 같다.
[88] 하지만 그렇다고 PTSD는 뇌를 교체하지 않는 한 정신적인 흉터는 남게 되며 치료 이후에도 반드시 재발의 위험이 존재한다라고도 단언할 수 없다. 평생을 증오로 살았어도, 본인이 소화되고 납득되면 해당 고통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이 인간이다.
[89] 또한 뇌는 약화도 되지만 강화도 되고 원상복구도 한다. 피부가 덧나서 영구적인 흉터가 생긴 거를 뇌에 바로 대입하기에는 판단이 이르다.
충격적인 사건을 당한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제공해야 할 것은 정서적인 지지와 그 사건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용기를 북돋는 것이다. 또한 이 상황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이완요법 등의 적응 방법을 교육하는 것도 좋은 치료 방법이다. 또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질환과 치료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개인의 의지가 매우 강한 사람이라면 예후가 좋은 편이지만 정신력이 강하든 그렇지 않든 모든 환자는 초기에는 불안과 공포 등의 증상을 경험한다. 하지만
정신력이나
의지드립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의지는 결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질병 자체가 전쟁, 또는 각종 극한상황 때문에 발생하는 병이고, 그 빈도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그런 편견이 발생하는 것뿐이다. 게다가
의지가 강한 사람일 수록 오히려 무너질 때의 위험도가 높다는 점도 주목해야 하는데, 베트남전에서 수십 명의 베트콩을 저격한 유능한 저격수가 죽기 직전의 베트콩의 얼굴을 우연히 보고 나서 고통을 겪게 된 일화도 있다.
또한 앞에서 언급된 대로 PTSD의 원인이 되는 경험은 개인의 경험에 근거하는 경우와 조직으로서의 경험에 근거하는 경우로 구분된다. 이 중 조직으로서의 경험 또는 단체가 겪은 사건의 경우 경험자간의 동지의식을 통해 상대적으로 충격을 완화할 수 있으며 동시에 같은 사건을 경험한 경험자들(군대라면 전우들 특히 한솥밥을 먹고 함께 사선을 넘은 같은 소대원이나 중대원들)이나 적어도 같은 조직의 구성원들이 서로 의지함으로서 후유증을 비교적 줄일 수 있음도 수 차례의 전쟁에서 발생한 귀환병의 카운슬링 과정에서 입증되어있다. 이런 특성이
제1차 세계 대전이나
제2차 세계 대전에 비해 베트남전 및 이라크 전쟁 등 최근의 전쟁에서 PTSD 발생 빈도가 급격히 올라간 중요한 원인이라는 설도 있다. 앞의 두 전쟁은 병사들이 싸워야 할 확실한 이유가 있었지만 후자들은 그것이 확실치 않다는 점에서 병사들의 심적 부담을 한층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와 연관된 의미 있는 한 베트남전 참전 용사의 발언이다.
책임자들이 적절한 정신적 도피처를 제공하는 것으로 비교적 쉽게 PTSD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울 수도 있으나, 문제는 이와 같이 PTSD를 줄이는 방법이 반대로 PTSD를 일으킨 이들을 겁쟁이로 모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세계대전에서 발생한 PTSD 환자들이 겁쟁이로 몰린 이유에는 바로 저 문제, 즉, '전우들과의 교감을 통해 어떻게든 그 충격을 이겨낸 사람'이 많았기 때문도 있다. 상대적으로 전우들과의 교감이 부족했거나(이 문제 때문에 군 내부에서의
왕따나
기수열외가 위험한 행위다.), 아니면 처음부터 이겨낼 의지가 부족했던 사람일수록 더 쉽게 PTSD를 일으켰던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전우들끼리는
누가 저런 상태인지를 더 쉽게 파악하고 자신과 다른 동료들의
걸림돌로 간주하는 자기보호기제가 형성되기 쉽다는 것 때문에 최악의 경우에는 전우들의 도움이 부족해 끝내 이겨내지 못 한 자들을 이겨낸 자들이 겁쟁이로 치부하는 어불성설이 벌어질 수 있다. 특히 징병제인 한국군의 경우 전시에 이런 문제가 더 심할 가능성이 크다.
PTSD를 이겨내는 방법은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자신이 참전했던 전장에 대한 당위성과 정당성을 부여, 자기합리화를 시행해 정신적으로 이겨내는 방법도 있다. 또한 정신과 의사들은 재향군인회 같은 곳에 들어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기를 권하기도 한다.
중동에 참전한 미군들의 PTSD 문제가 심화되자 동물치료나 요가 치료 풀 스펙트럼 워리어 같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고통의 원인을 스스로가 알아가도록 돕는 등 다양한 치료가 시도되는 중이다.
다음은, 미국에서
6.25 전쟁에 참전한 후 PTSD를 아직까지 앓는 노병들에게 정신과 의사들이 권하는 치료 방법에 대한 얘기이다. 한국 전쟁은 미국에서
잊힌 전쟁(Forgotten War)로 불릴 만큼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데다 전쟁 자체도 끔찍해 전후 PTSD 환자들 중 심적 부담이 큰 전쟁중 하나였다. 거기에 2차대전 처럼 명확한 승전으로 끝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휴전으로 끝나 미국 내에서도 반응이 그다지 좋지 못했고, 그 이후의 한국도 장기간 독재정권기를 거쳤던지라 보람감을 느낄 이유가 적은데다가, 이제
냉전의 시대가 열렸는데,
소련도 아니라
중국에 비긴 모양이라, 2차대전 용사들처럼 당당하게 답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1980년대에 한국전에 대해 다룬
M.A.S.H.가 대히트 치기는 했지만, 이것도 한국을 베트남처럼 묘사하는 식의 고증오류가 많았기 때문에 참전용사들에게 마뜩치않은 드라마였다. 그러나 1988 서울올림픽과 2002 한일월드컵, 2018 평창올림픽을 비롯하여 여러 대규모 스포츠 행사가 한국에서 정상적으로 개최되었고, 삼성, LG, 현대를 비롯한 한국대기업들도 해외시장에 활발히 진출하여 이름을 알린데다가, 또한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의 시행으로 한국인 관광객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지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2010년대에 한국 대중문화가 아시아권을 넘어서 유럽과 북미권에서도 인기를 끌기 시작하였다. 이렇듯 참전용사 입장이 일상속에서 TV와 휴대폰, 자동차, 세탁기를 비롯하여 한국산 가전제품들을 써보거나, 때때로 한국인 관광객들을 만나보기도 하면서, 한국이 이렇게 성장했구나라고 체감할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에 PTSD를 겪을 여지가 줄어든것이었다.
그래서 한국전 60주년 기념으로
KBS가 미국에서 취재했던 한 노병은 PTSD 증상으로 60년이 넘도록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는데, 자신을 담당하는 의사가 약물 처방 대신에 "한국은 당신들 덕분에 성공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이번에 한국에 가서 당신이 지키고자 했던 것들을 보고 오라."는 진단을 내렸고 한국전 60주년 기념으로 초청된 그는 발전한 서울 거리를 보며 놀라고, 자신이 싸우던 주요 능선들이, 시가지로 개발되어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 걸 보고 인터뷰에서
내가 진정 가치 있는 일을 했구나라며 활짝 웃어보였다. 그 밖에도 전쟁 후 한국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노병들 또한
내가 싸웠던 명분을 찾았다며 만족해했다. 무엇보다 세계 최악의 독재국가인 북한이라는 훌륭한(?) 비교대상이 있어 효과가 배가된다.
[90] 빠르면 1988년 서울올림픽이나 2002 한일월드컵 등을 살펴보면서 감회에 접어들기도 하고,
이는
"어째서 2차 대전 참전용사가 한국전쟁 참전용사에 비해, 그리고 한국 전쟁 참전용사가 베트남전 참전용사에 비해 훨씬 PTSD 환자 숫자가 적은가?"에 대한 아주 명쾌한 해답을 제공한다. 적어도 참전용사들의 PTSD 증상은 그들이 행해야만 했던 살상행위에 대한
정당화 기제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
2차 대전 당시 연합국들은 당시 자국의 군인들을 잔혹한 추축국에 대항해 인류의 존엄을 수호한다는
인류의 자유를 지키는 반 전체주의 성전의 전사로 추켜세웠다. 1942년 8월 한 달 동안에만
인디애나폴리스에서 7명이 모병에 떨어졌다고 자살하는 일이 일어났다. 징병도 아니고, 즉, 본인이 군대에 가고 싶다고 하는데 신체검사에서 떨어졌다고 비관해서 자살했다는 소리다. 이 정도로 당시의 참전 열기는 뜨거웠으며 비단 인디애나폴리스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징병검사에서 탈락한 이들이 자살하는 일들이 속출했다. 그리고 이들은 현지 민간인들에게
해방자로서 환영을 받고 수십 년 뒤까지도 널리 받아들여지는 정당한
대의 아래 적의
정규군을 상대로, 전시국제법을 최대한 지키면서 맞서 싸운 끝에 당당하게
승리했으며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대규모
승전 기념 행사를 치르고 그들이 받아들이고 감내한 고난에 대해 끊임 없는
사회의 경의와 찬사를 받는 2차 대전 참전용사가 민간인, 포로 학살이라도 하지 않은 한 자신의 살상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매우 용이하다.
한국 전쟁 참전용사는 2차 대전 참전용사처럼 궁극적 승전이나 대규모 승전 기념 행사, 넓은 사회적 관심을 얻지는 못했으나 부당한 침략으로부터 연약한 신생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을 구원한다는 대의 아래 북한, 뒤이어 중국, 소련의 정규군과 싸웠으며, 훗날 자유롭고 번영하는 국가가 된
대한민국의 감사를 받고 있다. 2차 세계 대전 참전용사만큼 호의적인 환경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PTSD 발병률이 낮을 수 있다.
하지만 베트남전 참전용사는 제국주의적 침략이라는
반전 여론 아래 여자, 어린이, 노인을 포함한
보이지 않는 적과 싸웠으며, 그들이 지키기 위해 싸운
남베트남은 끝내
멸망했고, 고국에 돌아와서는 "영아 살해자(Babykiller)"라는
사회적 냉대와 빈번하고 직접적인 타인의
모욕에 노출됐다. 자연히 자신의 살상행위에 대한 정당화는 불가능에 가까웠으며 PTSD 발병률은 어마어마하게 치솟았다. 이라크 및 아프간 참전 장병들의 PTSD 문제 또한 위의 베트남의 경우와 바로 딱 들어맞는다. 그나마 아프간은 종교 광신집단 탈레반이 적이고 9.11의 복수라는 명분이라도 있지, 이라크는 그것도 없다. 고대부터 존재했던 전쟁에 대한 질문인 '왜 전쟁을 하려면 대의명분이 필요한가'의 또다른 해답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한 가지 반론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서부 전선의 참전용사보다 태평양 전쟁의 참전용사의 PTSD 발병률이 높다는 반론이 있다. (발병률 통계 자체의 신빙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이는 '정당화 기제'와는 조금 다른 이유가 작용한다.
태평양 전쟁 문서에서 알 수 있듯이 태평양 전선의 환경은 유럽 서부 전선과는 전혀 달랐다. 서부 전선의 나치 독일군이 광신적인
나치즘에 빠졌다곤 해도
항복을
거부하고 특공을
하는 등 정신나간 행위는 그리 많지 않았다.
[91] 이러한 상황에서 참전용사들이 받은 육체적, 정신적 충격은 엄청났고, 비록 태평양 전쟁의 참전용사들이 서부 전선 참전용사들과 동등한 수준의 '정당화 기제'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이것으로도 그 충격을 무마하기엔 부족할 지경이었다. 자연 환경 또한 대부분이 열대나 고립된 섬으로서 기후는 물론 문화적인 동질감이 강한 서유럽과는 근본적으로 달랐으며 나치즘에 대한 비판과 비난, 그리고 부도덕성에 대한 주목은 지속적으로 환기되었으나 일제의 만행이나 적이 었던 일제의 부도덕성이나 그에 따른 자신들의 정당성 확보는 서유럽 보다 다소 약한 면이 있었고 되려 이런부분에 대한 주목은 2000년대 이후 한국과 중국의 성장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되레 주목 되었지 태평양전쟁은 미국 사회에서 꽤 소외된 전장이었다.
PTSD를 완화하는 치료방법으로는
‘EMDR’(Eye Movement Desensitization and Reprocessing)이 있다. 2004년 미국 정신의학회가 PTSD 치료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인정한 치료이며
[92] 이는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는 동시에 치료자의 지시에 따라 눈을 좌우로 굴리며 소리를 듣거나 촉각을 느끼거나 하는 활동을 하는 것으로 트라우마의 원인이 된 기억이 덜 불편하게 느껴지게끔 하는 것이다. REM 수면에서 안구가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하며 괴로운 기억을 희미하게 만들거나 잘 기억나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전문 자격 훈련을 받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나 임상심리전문가에 의해 시술받아야만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데, 어설프게 따라했다가 실제로 오히려 병을 악화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보고되었다. 절대로 따라하려고 하지말자. 수면과 유사한 기전, 혹은 안구를 굴리는 행위가 PTSD 기억과 연관된 뇌내 시냅스 연결의 재구축에 기여하는 것이 효과의 기전으로 추정되는데, 어설프게 했다간 시냅스 연결이 더 강화되어 외상성 기억이 보다 강하게 각인되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일반인에게는
불면증 치료용으로 응용되기도 한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테트리스를 잡는 것도 도움이 된다. 테트리스를 한 쪽이 안 한 쪽보다 플래시백이 줄었다. 사고 순간을 떠올리면서 테트리스를 하면 EMDR같은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
또 한 가지는 PTSD 소리 요법을 귀 기울여 들어보는 것이다.
2014년 9월 11일 9.11 테러를 추모하며 테러 피해자들의 PTSD 회복을 기원하면서 만들어졌다. 자사 홈페이지에서 10달러에 판매하고 있으나 다행히
유튜브에서 무료로 들어볼 수 있다. 주변에 PTSD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을 권유해보도록하자.
존 브래드쇼의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를 보면 어린 시절에 겪은 PTSD를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하는데,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소위 내면아이 치료법이라는 것은
실제 PTSD와는 전혀 이론상의 접점이 없다! 정말로 유년시절에 성폭력을 당하는 등의 외상을 겪은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은 그런 류의 책들이 예상하는 흔한 독자들보다 훨씬 비참한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사실 내면아이 치료법이라는 것 자체가 임상
심리학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심리학의 링으로 올라와서 진지하게 논의된 적은 2015년 현재까지는 사실상 없다시피 한 치료법이다. 공연히 공허하고 우울하고 슬프고 짜증이 나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되어줄 수는 있으나 문제는
그런 수준의 정서적 부전 상태를 보고 PTSD라고 말하는 심리학자는 없다는 것이다.
[93]상이용사들을 대상으로 한 PTSD 연구는
미국 육군부 등을 중심으로 하여 임상심리학, 군사심리학, 상담심리학 분야에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고, 특히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등에 파견되었다가 돌아온 병력들의 사후조치라는 측면에서 수요가 굉장히 높은 응용심리학 분야이다. 이런 연구의 최신 흐름에서는 개인 내적인 인지적 측면이나 의료적 개입(intervention) 외에도
가족 친지들이나
친구들과 같은 사회적 지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개인 내적 측면에 대해서는 일명 "배틀마인드(BATTLEMIND)
[94]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어떻게 마음가짐을 유지하고 인지적 평가를 할 것인지를 도울 수 있는 방법들이 많이 있다.
고압산소요법(HBOT: hyperbaric oxygen therapy)이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반면 국내에서는 6.25나
월남파병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PTSD 연구가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불행 중 다행히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하여 PTSD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기 시작했으며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간접적 외상에 대한 상담 서비스를 홍보한 것도 사상 처음일 정도이다. 이 분야 연구가 활성화되고 더 많은 국민들이 PTSD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버린다면 더 많은 환자들이 적절한 지원과 개입을 받을 기회를 얻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보면서 우리가 한 가지 더 잊지 말아야 할 점이 한 가지 더 있는데,
전쟁과 사고, 학교폭력, 그리고 성폭력은 사람을 이렇게 망가뜨릴 정도로 끔찍하다는 것, 따라서 미디어 매체에서 보이는 폭력과 유혈 등 여러 묘사에 익숙해저 이들이 겪을 고통에 무심해지는 것은 크나큰 문제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