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竺國俗, 甚重文製. 其宮商體韻, 以入絃為善. 凡覲國王, 必有贊德. 見佛之儀, 以歌歎為貴. 經中偈頌, 皆其式也. 但改梵為秦, 失其藻蔚, 雖得大意, 殊隔文體, 有似嚼飯與人, 非徒失味, 乃令嘔噦也.
천축국의 풍속은 문장의 체제를 대단히 중시한다. 그 오음(五音)의 운율(韻律)이 현악기와 어울리듯이, 문체와 운율도 아름다워야 한다. 국왕을 알현할 때에는 국왕의 덕을 찬미하는 송(頌)이 있다. 부처님을 뵙는 의식은 부처님의 덕을 노래로 찬탄하는 것을 귀히 여긴다. 경전 속의 게송들은 모두 이러한 형식이다. 그러므로 범문(梵文)을 중국어로 바꾸면 그 아름다운 문채(文彩)를 잃는다. 아무리 큰 뜻을 터득하더라도 문장의 양식이 아주 동떨어지기 때문에 마치 밥을 씹어서 남에게 주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다만 맛을 잃어버릴 뿐만이 아니라, 남으로 하여금 구역질이 나게 한다.
<양고승전(梁高僧傳)>권2, 진장안구마라집(晉長安鳩摩羅什)[3]
일단 번역을 잘 하려면
도착어[4] 실력이 대단히 뛰어나야 한다! 외국어 문장을 보고 이게 무슨 뜻인지는 아는데 정작 옮기려면 적절한 느낌을 지닌 단어를 선택하는 게 굉장히 힘들다는 걸 대충이나마 번역을 해본 사람이면 알 것이다. 텍스트 전체의 내용과 그 배경, 의미, 미묘한 뉘앙스
[5]를 모두 고려해야 하므로 모어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지식이 필요하다. 특히
시나
노래,
영화나
게임의
제목 등을 번역할 경우 그 언어를 웬만큼 잘 안다 하더라도 단어 하나하나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매우 어렵다. 정말로 많은 사람이 간과하는 것이지만 번역자의 첫째 조건은 훌륭한 언어 실력이다. 게다가 프로 통번역가라면 외국어 → 모어 뿐만이 아니라 모어 → 외국어 번역도 어느 정도 할 줄 알아야 한다. 당연히 후자가 더 어렵기 때문에 번역 단가도 그만큼 높다.
[6]거기에 번역이라는 것은 단순히 외국어 실력 뿐만이 아니라 각 나라의 관습, 문화, 역사 및 관련 분야 지식에도 능통해야 하고
[7] 언어유희는 물론
직역과
의역을 동시에 능숙하게 다뤄야 하며,
[8] 여기에 원문이
시나
노래 가사 같은
운문이라면 운율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의 문제로 시적인 감각까지 요구하고, 때때로 의역을 넘어선
초월 번역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고된 작업이다. 이에 대해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명언이 있을 정도다.
[9] 이 문단의 서술도 사실은 어느 정도 전문번역가들의 시각이고 예컨대 철학책을 원문직역한다고 했을 때 단순히 어문학과 교수 출신들은 매우 높은 확률로 오독 밎 오역을 많이 한다. 결국 해당 분야의 조예가 깊은 전문가들이 직접 번역가들만큼 해당 언어 지식을 쌓고 번역을 해야 가장 정확한데 한마디로 한국어에 대한 이해가 풍부하면서 해당 외국어와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도 풍부하거니와 해당 번역내용의 전문가 혹은 전공자가 원전번역을 해야 제대로된 번역이 될 가능성이 큰 상당히 조건이 까다로운 일인 것이다. 또한 일반인이 주로 접하는 영화/만화/소설같은 경우에는 번역 기간이 매우 촉박하기 때문에 오역을 줄이기 위해서는 번역가의 실력이 더욱 중요할 수 밖에 없다. 다만 역설적이게도 촉박한 번역 기간 때문에 고용주측이 번역가의 실력보다는 펑크를 내지 않는가에 대한 신뢰성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번역 일을 시작하려면 우선 인맥이 있어야 쉽다는 얘기도 있으며, 대부분의 번역가 자질 논란이 이런 인맥/번역 속도 위주의 업계 사정 때문에 일어난다.
굳이 대중문화 뿐 아니라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도 번역은 매우 중요한데, 정작 대한민국 학술계는 번역을 대단히 하찮게 여긴다. 대충 해당 분야를 전공한 말단 대학원생 혹은 초짜들이나 하는 것으로 여기며 투자를 안 한다. 이 경우 해당 분야 지식은 있을지 몰라도 번역자로서 필요한 국어 실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원서보다 읽기 어려운 것들이 양산된다. 대충 일본식 번역을 빌려오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국내에선 쓰이지 않는 일본식 한자용어도 난무한다. 도올
김용옥 교수가 번역을 무시하는 이런 현실을 여러 차례 비판한 적이 있다. 이러한 번역에 대한 취급 때문에 번역서들의 수준이 더욱 낮아지고 외국 원서에 대한 추종이 심해지며, 더더욱 번역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학계에서도 이런 심각성을 알고 번역에 대한 인식을 높이려 하는 움직임이 있지만 여전히 현시창에 가깝다.
이런 현실은 한영번역이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영어를 잘한다 하더라도 글을 잘 쓰는 것과는 다르기에 영미권에서 자란 한영번역만 맡는 번역가들이 꽤 있다.) 번역 시 직역이 아닌 능동적인 번역을 원한다면 당연히 표현 하나하나에 적잖은 고민을 해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번역가들이 받는 번역단가는 낮아 그렇게 시간을 투자해서 번역할 경우 먹고 살기 힘들다. 결국 직역수준으로 빠르게 번역할 수밖에 없는데 이게 또 의뢰자들 입장에서는 불만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번역이 rewriting을 의미한다 하여도 본인 외에는 이해하기 힘든 정도의 글을 기가 막힌 문장들로 구성된 번역본으로 탈바꿈 시켜주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문제다. 물론 표현이 깔끔하고 정확한 언론기사라든지, 공공문서, 기업자료, 공식보고서들의 경우 원문 자체가 이해가 쉬워 번역이 용이하다. 반면, 대다수의 글들은 문법의 철저한 파괴는 기본이고 아무리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이해조차 어려운 수준인 경우가 흔하다.
게다가 번역자가 알아서 좋은 문장으로 바꿔줄 것을 기대하고 의뢰하기 때문에 대충 써놓고 이런 이런 의미니 알아서 훌륭한 영어문장들로 탈바꿈시켜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번역이 아닌 대필을 요구하는 셈이다. 이런 경우들은 특히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나 번역료는 균일하기에 고충이 많다. 또한 대다수 평생 제대로 된 글쓰기 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없다보니 매우 기본적인 문법도 지키는 경우가 드물고, 두리뭉실한 표현이나, 상황에 맞지 않는 단어들을 사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렇기에 원문을 읽다보면 의미파악이 되지 않아 계속 작성자의 의도를 어렵사리 추론해내야 하는 과정이 많아 시간이 더욱 지체된다. 결국 제대로 된 번역이 나올수가 없는 환경이란 거다. 20년째 인상은 커녕 오히려 하락하고 있는 번역단가 때문에 훌륭한 문장력을 가진 이들은 번역계를 떠나게 되고 실력이 없는 이들만이 남게 되어 전반적인 번역의 질은 나날이 떨어져가고 있다.
반면에 전문
번역가들은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 수 있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해당 전공자를 공동번역자나 감수로 붙여줘야 하는데, 금전적인 문제로 인해 대부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수준 이하의 오역이 속출하고 아예 원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내용이 산으로 가버리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야구를 다루는 《
머니볼》의 국내발매 초판은 야구 용어에 수많은 오류가 난무했다.
밀덕 지식이 부족한 번역자의 전쟁영화 자막, 과학기술 지식이 없는 번역자의
SF 소설 번역 등등
덕후 입장에서 읽다보면 어이가 없어지는 이런 사례는 정말 끝도 없이 나온다. 이런 문제는
오역 문서에 보다 자세히 설명돼있다.
오래 전부터 번역은 많은 번역가들에게 고민거리였다. 이를 잘 설명한 글이 있다.
번역과 번역 문화.
잭 니콜슨 주연의 영화《Something's Gotta Give》의 경우를 들어보자. 이 제목은 대충 '(무언가를 하려면) 뭔가 줘야 한다, 즉 포기 혹은 희생해야 한다' 정도가 될 테지만 이걸 앞뒤 자르고 영화 제목으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결국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이란, 맞는 뜻이기는 한데 다소 장황한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이런 예는 수도 없이 많다.
Let It Go,
가을의 전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문서 참조.
번역의 어려움은 언어 체계, 구체적으로는 문장구조나 단어 조합, 더 나아가서는 모어 화자의 사고방식 등이 언어권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때문에 우리말로는 단어 몇 개에 불과하지만 외국에서는 문장이 줄줄이 이어진다든가, 혹은 그 반대의 경우가 자주 나타난다.
작품 중에는 아예 번역 자체가 대사업인 케이스도 있다.
피네간의 경야는 40개의 언어로 이루어진 괴이한 작품으로 한때 번역 자체가 불가능하게 여겨질 정도로 난해한 물건이라 한국어판의 경우 결국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의 권위자인 김종건 교수가 고통스러운 번역 끝에 번역본을 내놓았으나 이마저도 신조 한자어가 너무 많아서 완전한 번역이라고는 하기 힘든 작품이었다. 무슨 문자인지조차 몰라서 번역이 불가능한 케이스도 존재한다.
보이니치 문서와
로혼치 사본,
파에스토스 원반은
마도서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고고학/암호학자들을 빡치게 만드는 물건들. 그러나 사실 이런 예는 번역이 아나라 "해독"이다. 번역은 "양 쪽 문자와 언어를 다 안다."는 전제가 있다.
종종
존비어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언어, 대표적으로
미국 등의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대사를 번역할 때 상황이나 별 다른 이해 관계 없이 여성 캐릭터는 무조건 존댓말을 쓰는 경우가 있다. 이런 남존여비식 의도적인 오역을 춘추필법이라고 낮춰 부른다. 그러나 춘추필법은 역사서 서술 방식일 뿐이고 이런 번역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왜 이런 번역을 춘추필법이라고 부르는 지는 의문이다.부영화 번역자
이미도가 이 점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는다.